지휘자, 작곡가 등이 바뀌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다. 하지만 그 과정이 지저분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. 그동안 다져온 자산을 유지하고 향후 더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는커녕 어떻게든 흠집을 내기 위해 공로를 무시하고 위업을 폄훼하기 일쑤다.
놀란 점이 하나 있다. 바로 객석 3층이 꽉 들어찼다는 점이다. 3층에는 초대권이 거의 안 뿌려지기 때문에 대부분 유료관객이다. 다시 말해 정말 음악을 듣고자 하는 실수요자라는 뜻이다. <아르스 노바>는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는 실험적인 연주회여서 객석 점유율이 늘 낮았다. 한데 3층이 꽉 찼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. 10년 넘게 진행해온 <아르스 노바>의 가장 소중한 자산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.
이 많은 사람들이 거의 20개월의 긴 시간 동안 경험한 것, 수많은 직원들의 퇴사, 그리고 제가 그 기간 동안 들어왔던 호소, 깊은 한숨, 분노와 보아왔던 눈물들을 조작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,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. 엉뚱한 음모론의 대두로 이 사태의 본질은 흐려져 갔고 안타깝게도 정 전 감독과 시향이라는 공공단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. 저는 이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평생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인간의 깊은 밑바닥을 접할 수 있었고 거기에 자리 잡고 있는 비열함, 추악함, 가증스러움에 소스라쳐 놀랐습니다. 또 지성인, 문화인을 자처하는 우리에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배후설, 조종설, 조작설 같은 천박한 차원의 얘기가 어느새 일상용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습니다.